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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비즈니스리뷰

동아비즈니스리뷰

https://dbr.donga.com/article/view/1203/article_no/9348
 
Article at a Glance 동네 사람끼리만 중고물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한 동네 기반 서비스 당근마켓은 커머스 플랫폼이 아닌 하이퍼로컬(hyper-local) 콘텐츠 플랫폼을 지향하며 지역 커뮤니티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회사의 성장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한 플랫폼 사업이지만 ‘거래’를 늘리는 데 급급하지 않고 동네 이웃 간 ‘연결’이라는 기본에 집중해 사용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2. 전국을 6500개 동네로 쪼개고 주민들의 접근만 허용함으로써 ‘신뢰’와 ‘평판’이 가지는 이점을 살렸다. 직거래를 주선하는 방식으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 거래비용을 낮추고 사기 위험을 최소화했다. 3. 동네 소비자에게는 지역 ‘광고’도 ‘정보’가 될 수 있다고 판단, 40∼50대 소상공인도 단돈 만 원 단위로 손쉽게 동네 광고를 집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현했다. 과거 교차로, 벼룩시장 등 생활 정보지의 기능을 온라인으로 옮겨 신규 수익 모델을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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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사는 주민 A에게 대치동은 ‘우리 동네’일까? 잠실이나 사당은? 객관적인 지표인 거리를 역삼동의 강남역 사거리에서 잰다면 사당역(직경 약 5.1㎞), 옥수역(5.8㎞), 잠실역(6.8㎞) 순으로 가깝다. 그러나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 너머 강북(江北)과의 심리적 거리, 강남(江南) 3구의 상징성, 지하철 노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A에겐 물리적으로 가장 멀리 있는 잠실이 가장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최근 중고 거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고나라만큼이나 유명한 모바일 앱인 당근마켓은 바로 ‘우리 동네’ 사람끼리만 중고물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위치(GPS) 기반 서비스다. 이름부터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준말이다.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끼리 집 주변에서 직거래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게 서비스의 핵심이다. 얼핏 보면 동네를 인증한다는 것 외에 다른 중고 거래 웹/앱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최근 성장세만큼은 독보적이다. 육아 맘들의 입소문을 타고 2018년 1월 100만 명이었던 월간 순이용자(MAU) 수가 같은 해 12월 160만 명, 2019년 9월 350만 명으로 증가하며 가파른 J커브(J자 모양 급상승)를 그리고 있다.
월 거래액 500억 원, 누적 다운로드 수 800만 건을 돌파하며 업계 선두주자인 중고나라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당근마켓. 그러나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김용현 대표(42)와 김재현 대표(41)는 2015년 7월 처음 중고 거래를 전면에 내세운 스타트업을 설립하면서 “어떻게 하면 중고나라를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이용자 수와 쓸 만한 매물이 많아야 거래가 잘 성사되는 플랫폼 사업의 특성상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데 ‘거래’만 놓고 보면 전국 기반 플랫폼과 ‘게임이 안 된다’고 봤다. 승산 없는 싸움에 힘 빼기보다는 같은 동네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기본 아이디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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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두 창업자는 우선 전국 지도부터 펼쳐 들었다. 그리고 손수 경계선을 그려가며 “우리 동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를 물었다. 고민 끝에 차로 10분 이동하는 거리를 벗어나면 접근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판단, ‘최대 반경 6㎞’라는 원칙을 세운 뒤 전국을 동네 단위로 쪼개기 시작했다. 한강이나 남산처럼 직거래를 방해하는 큰 지형지물이 있으면 거리가 가깝더라도 과감히 동네를 구분했고, 지하철 등 대중교통까지 고려해 전국을 6500개 구역으로 잘게 나눴다.
다른 커머스 플랫폼들이 거래 범위를 더 넓히고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혈안인 가운데, 왜 당근마켓은 안 그래도 좁은 한국 땅을 6500개로 조각낸 걸까. 이유는 분명하다. 회사가 중고 거래로 돈 벌 생각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동네 주민들 사이의 중고물품 직거래를 주선할 뿐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고 거래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보고 있다는 게 당근마켓이 중고나라처럼 규모로 맞붙는 플랫폼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점이다.
대신 두 창업자가 주목하는 시장은 로컬 콘텐츠다. 일찌감치 지역 중에서도 가장 작은 단위인 ‘하이퍼로컬(hyper-local)’의 가치에 매료된 이들은 당근마켓을 지역 사람들이 생산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장, 즉 콘텐츠 플랫폼으로 정의했다. 중고거래를 마을 벼룩시장과 장터처럼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콘텐츠의 하나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오프라인 만남, 거래, 커뮤니케이션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을 회사의 궁극적인 비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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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전이 실현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소프트뱅크벤처스, 카카오벤처스, 알토스벤처스 등 유수의 투자사는 지금까지 총 480억 원을 투자하며 당근마켓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근마켓의 O2O 비즈니스 잠재력과 동 단위로 세분화된 이용자 데이터베이스(DB)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연 카카오, 네이버 등 대형 포털도 손대려다 번번이 실패한 지역 기반 서비스로 도전장을 내민 이 회사의 비전이 실현될 것인지, DBR이 당근마켓의 하이퍼로컬 플랫폼 전략을 살펴봤다.
카카오 플레이스의 실패, 지역 기반 비즈니스에 눈 뜨다
2012년 카카오에서 근무하던 김용현 대표는 당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직접 발족한 태스크포스(TF)에 손들고 합류했다. 그 무렵 김범수 의장은 특정 동네에 특화된 ‘타깃 서비스’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근거리 위치 기반 서비스를 만들어 각종 지역 업체나 지역 이벤트 광고를 카카오톡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다는 구상을 직원들과 공유했다. 길바닥에 뒹굴고 있거나 아파트 벽보에 붙어 있는 각종 지역 헬스클럽, 피아노 학원, 미용실, 구인광고 전단지 등을 카카오톡 안에 펼쳐놓고 지역 주민들에게 노출시켜 보자는 아이디어였다. TF 이름부터 ‘롱테일(Long Tail)’이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잡다한 지역 정보, 소위 ‘지라시’도 온라인에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프로젝트였다.
이 사업 아이템에 꽂혀 TF에 자원한 사람은 카카오 전체를 통틀어 김 대표 혼자였다. 입사 전부터 ‘친구의 맛집’ 등 동네 맛집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기획한 경험이 있는 김용현 대표는 지역 기반 서비스에 곧바로 흥미를 느꼈지만 대다수 직원은 아이디어에 회의적이거나 관심이 없었다. TF는 인력 모집부터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카카오가 ‘씽크리얼스’란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탔다. 이 업체 개발자들이 합류하면서 6명으로 구성된 작은 별동대의 구색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씽크리얼스는 소셜커머스 모음 사이트 ‘쿠폰모아’와 맛집 정보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리스트 잇’ 등을 운영하던 업체였는데 그 창업자가 바로 현재 당근마켓의 공동 대표인 김재현 대표였다.
“내가 기획했던 ‘친구의 맛집’과 비슷하게 지인들이 호평한 인근 맛집을 추천해주는 씽크리얼스의 서비스를 안 그래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TF에 합류한 김재현 대표가 그 서비스를 개발한 주인공임을 알고 ‘운명’이라 느꼈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이 TF가 야심 차게 론칭한 서비스가 바로 ‘카카오 플레이스’다. 지역 광고 플랫폼을 내놓자며 시작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광고 전단지만 모아서는 콘텐츠로서의 매력이 떨어졌고, 아무도 안 볼 게 분명했다. 나중에 광고를 붙이더라도 일단 이용자의 관심을 끄는 게 우선이었다. 이에 방향을 틀어 다시 동네 맛집 리뷰 서비스로 돌아갔다. 카카오가 보유한 이용자 간 소셜 그래프를 바탕으로 친구들이 좋은 리뷰를 쓴 맛집이 화면에 자동 노출되도록 한 것이다. 성공을 확신한 이들은 장장 8개월간 각종 스펙으로 무장한 서비스를 준비해 2013년 5월 세상에 내놨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카카오프렌즈 이모티콘을 배포한 덕분에 불과 일주일 만에 다운로드 수가 200만 건에 달했지만 그다음 주에 5000건으로 수직 낙하했다. 하루 실사용자(DAU)가 5000건밖에 안 나오자 카카오는 프로젝트를 실패로 규정하고 TF를 해체했다. 앞서 출시된 카카오스토리가 일주일 만에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사업 아이템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공을 의심치 않았던 서비스가 시장에서 외면받는 것을 본 이들은 실패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진단했다. 첫째, 사람들이 맛집을 찾는 빈도가 생각만큼 잦지 않았다. 지역 광고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려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처럼 사용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들어가 구경하는 서비스가 돼야 하는데 맛집을 찾아가는 건 한 달에 두어 번 저녁 모임이 있을 때가 전부였다. 둘째, 서비스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가볍게 시장 반응을 테스트해본 게 아니라 8개월간 각종 기능을 탑재해 무겁게 내놓았기 때문에 실패 비용이 훨씬 커졌다. 사용자 니즈를 확인하기도 전에 상상만으로 대박이 날 것이라 짐작한 게 패착이었다. 카카오 플레이스의 실패에서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1) 체류 시간이 길고, 방문 빈도가 높은 서비스를 2) 최대한 빨리 가볍게 내놓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보는 재미, 중고 거래의 ‘콘텐츠 매력’에 주목
체류 시간이 길고, 방문 빈도가 높고, 빨리 선보일 수 있는 서비스를 고민하던 이들은 당시 카카오 직원들이 회사 인트라넷에 있는 중고 거래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직원들이 하루에도 5∼10번씩 게시판에 들락날락하면서 어떤 매물이 나왔는지 확인하고 ‘새로 고침’하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카카오 직원 150명만 쓰는 게시판에 불과했지만 이 사내 장터에 스마트폰, 게임기 등 중고 디지털 기기를 올리면 10분이 채 안 돼 팔려나갔다.
사내 장터의 인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첫째, 거래가 편했다. 회사 사람들끼리 출근하면서 물건을 주고받으면 되니 접근성이 탁월했고, 번거롭게 박스에 담아 택배로 부칠 필요가 없었다. 둘째, 게시글을 쓸 때 본인 이름을 밝히기 때문에 돈 떼일 염려가 없었다. 보통 모르는 사람끼리 거래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게 사기나 불량의 위험인데 회사라는 비교적 믿을 수 있는 동질적인 집단의 일원이다 보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셋째, 가격이 저렴했다. 직원들이 사내 평판을 생각해 바가지를 씌우거나 굳이 비싸게 팔기보다는 시가보다 20∼30% 싸게 내놓았고, 덕분에 ‘쿨매(저렴하고 좋은 조건의 매물)’가 많았다.
직원들이 이 쿨매를 낚아채고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중고 거래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성비 좋은 매물을 놓치지 않으려면 수시로 게시판을 모니터링해야 하기 때문이다.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는 마을 벼룩시장처럼 목적 없이 지나가다 들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보는 재미’, 즉 중독성 있는 콘텐츠로서 중고 거래의 매력을 발견한 셈이다.
“현재 당근마켓 사용자 한 명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앱에 머무는 시간이 18∼20분이다. 일반 쇼핑 앱보다 약 2∼3배 길다. 어떤 좋은 조건의 물건이 올라오는지가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같다. 특히 남성들은 필요한 디지털 기기 등만 딱 검색해서 사지만 여성들은 육아용품이나 패션, 잡화 등 아이쇼핑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지털 광고회사 인크로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당근마켓의 월평균 체류 시간은 264.1분으로 위메프, 옥션, G마켓 등 덩치 큰 플랫폼을 제치고 커머스 앱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중고 거래에서 기회를 포착한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카카오를 나와 좁은 지역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TF 해체와 카카오-다음 합병 이후 커진 조직에서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 때였다. 네이버에서 약 7년간 지역 검색 서비스를 담당하던 현 정창훈 CTO도 함께 뜻을 모아 2015년 7월 ‘판교장터’란 회사를 차렸다. 카카오 사내 중고 거래 게시판의 확장판이었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근무하는 회사들이 대상이었다. 판교는 가로 700m, 세로 400m의 좁은 동네지만 비슷비슷한 IT 회사가 밀집해 있고 디지털 용품 등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카카오 플레이스 실패의 교훈을 되새겨 단 2주 만에 개발을 끝마치고 게시판 하나와 댓글 쓰기, 달랑 두 가지 기능만 갖춘 최소한의 서비스를 출시했다.
물론 서비스를 개시하자마자 처음부터 반응이 뜨거웠던 건 아니었다. 지인들에게 앱을 깔아달라고도 해보고, 중고물품을 양도받아 올리기도 했다. 온종일 판교 소재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전단지를 붙이고 드론에 현수막을 매달아 한 달간 판교역과 테크노밸리 사이 출퇴근길 하늘에 띄운 적도 있었다. 판교 인근 카페 사장님에게 사정해 할인 쿠폰 100장을 받고 앱을 다운로드한 신규 고객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구글, 페이스북에 광고할 돈도 없었고, 발로 뛰는 게 좁은 지역에서 서비스를 선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고생한다고 효과가 딱히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전체에 전단지를 돌려봤자 기껏해야 200명, 드론을 띄워도 2명 남짓 가입자가 늘었다.
“몸으로 부딪치는 동안 지역 업체가 광고를 할 만한 플랫폼이 정말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히려 이 경험을 통해 지역 소상공인들이 동 단위로 광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꼭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다졌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다행히 판교 내 회사들을 대상으로 영업한 결과 주간 사용자가 1000∼200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확장성’이었다. 판교처럼 비슷한 업종의 회사가 밀집해 있는 구역이 많지 않았고 가산디지털단지 등을 포함해봤자 총인구 100만 명에도 못 미치는 협소한 시장이었다. 게다가 신분 확인을 위해 회원 가입 인증 시 회사 도메인을 쓰게 했는데 이런 도메인을 보유한 직장인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회사 e메일 주소를 기재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의 경우 직원들이 회사 메일이 아닌 지메일, 네이버, 한메일 등 계정을 쓰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내 남편이 판교장터를 쓰는데 나도 거래하게 해달라”는 회원 아내들의 요청이 하나둘 접수됐다. 분당구 백현동, 상평동, 운중동에서 이런 문의가 적지만 꾸준히 이어졌다. 확장 경로를 모색하던 두 대표는 동네 주민들에게도 참여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가입 방식을 회사 메일 기반에서 휴대폰 번호 기반으로 바꾸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동네만 인증하면 누구나 중고물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했다. 말 그대로 ‘판교장터’를 판교 지역 주민 전체에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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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이 활동하기 시작하자 조용하던 앱이 들썩였다. 판교 맘카페에 소개 글 하나가 올라가고 단 이틀 만에 700명이 가입했을 정도였다. 중고 육아용품과 장난감을 찾는 맘들이 동네 물품에 관심을 보였고, 그 활동량은 회사 다니는 직장인의 10배를 능가했다. 김용현 대표는 “이때 중고 거래의 핵심 주체가 직장인이 아닌 집에 있는 주부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타깃 유저를 ‘아이를 키우는 3040 여성’으로 바꾸고 동네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2015년 10월을 기점으로 판교를 넘어 주거지역인 분당구로 진출했고 회사 이름도 판교장터에서 당근마켓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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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효과, 신뢰 기반으로 낮춘 거래 비용
“세상 참 좁다.”
이 말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니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함의를 내포한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로 잇고 물리적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지금, 당근마켓은 온라인 공간에 칸막이를 세움으로써 ‘좁은 세상’을 구현했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의 특징인 익명성을 없앤 대신 ‘신뢰’와 ‘평판 효과’ 1 를 극대화했다.
당근마켓이 회사 이름을 걸고 쓰던 서비스에서 ‘동네’를 아이덴티티로 내건 서비스로 바뀌었지만 지리적으로 인접한 장소 기반이라는 점은 변치 않았다. 당근마켓의 차별점이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이웃 간 ‘직거래’에 있기 때문이다. 중고나라, 번개장터 같은 전국 단위 플랫폼에서 물품을 사고팔려면 택배 배송은 필수다. 직접 물건을 건네고 싶어도 구매자가 판매자와 가까이 산다는 보장도 없고 동네 물건만 따로 분류해 볼 수도 없다. 반면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사면 같은 동네이기 때문에 육아용품, 가구처럼 크기가 큰 물품도 집 앞에서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당근마켓은 직거래 방식으로 여타 플랫폼이 골머리를 앓는 판매자와 구매자 간 ‘신뢰’ 문제를 해결했다. 당근마켓 이용자들의 경우 연락처나 집 주소 등을 공개하지 않아도 근처에서 거래 당사자 얼굴을 직접 보고 물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고거래의 가장 큰 위험인 사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실제로 당근마켓에 따르면 전체 거래액의 10%는 이미 한 번 만났던 사람들끼리의 재거래다. 그만큼 사람들이 사기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한 번이라도 만난 적 있는 ‘아는 사람’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이는 보통 전국 단위의 플랫폼에서 거래자가 재회할 확률이 거의 없는 것과 대비된다.
또 이같이 거래 당사자끼리 언제든 마주칠 수 있어 구조적으로 평판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는 사람들인 만큼 서로 매너를 지키게 되고, 피드백 하나하나도 더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다. 비매너 행동이나 물품의 하자를 속이는 일도 적은 편이다. 김용현 대표는 “거래를 하고 나면 후기를 쓰게 돼 있는데 부정적 후기의 비율이 0.7%로 1%가 채 안 된다. 다른 플랫폼과 비교는 힘들지만 99.3%가 긍정 후기라는 점으로 미뤄볼 때 사기 치기 힘든 구조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당근마켓은 이 같은 신뢰를 기반으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낮춤으로써 기존 플랫폼과는 또 다른 시장 수요를 유발했다. 거래비용이란 거래 상대방을 탐색하는 비용, 거래 상대방과 협상하는 비용, 거래가 이뤄진 후 거래 내용을 실제 이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믿을 수 있는 이웃들로 구성된 당근마켓의 커뮤니티는 탐색 및 거래 이행과 관련된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한정된 지역에서 ‘연결’이 가지는 가치를 다시금 확인시켰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거래 가격도 일반 중고 거래 플랫폼보다 약 30%가량 낮다.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품목을 정해놓고 다른 플랫폼과 일일이 비교 계산해본 결과라고 한다. “아무리 필요 없는 장난감이라 해도 우리 애가 쓰던 물건이 이상한 사람에게 가거나 버려지느니 누군가 잘 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지 않나. 계속 가지고 있어봤자 쓰레기가 되는데 친근한 동네 아이에게 주고 잘 쓰는 걸 볼 때 느끼는 심리적 만족감과 뿌듯함이 분명 있다. 그렇기에 무료 나눔도 하고, 장터에서 가격을 굳이 높게 받으려 하지 않는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이용자의 신뢰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UX/UI를 만드는 데도 공을 들였다. ‘매너 온도’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 기능은 거래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평판을 보여준다. 국내 음원 사이트 ‘멜론’에서 스타와 팬 사이의 친밀도를 온도계의 눈금으로 표시한 것을 벤치마킹한 이 매너 온도는 거래자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를 섭씨 0∼99도 계기판 위에 표시한다. 이 온도는 사람의 체온인 36.5도에서 출발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0.1도씩 올라가고, 거래 후기와 평가, 경고 및 징계, 신고 건수 등에 따라 오르내린다. 최근 1년 동안의 후기만 반영되며 평가 시점과 평가자에 따른 가중치도 다르게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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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평가에 무게를 두기 때문에 1년이 지난 평가는 온도에 반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매너가 좋았다 해서 지금도 좋다는 보장이 없고, 과거에 나빴다가도 지금은 뉘우치고 나아졌을 수도 있지 않나. 또 거래를 안 하면 자연히 매너 온도가 서서히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 활동할 유인을 주려는 의도도 있다. 마찬가지로 매너가 나쁜 구매자가 무작위로 판매자에게 퍼붓는 비방을 그대로 반영해 평판을 깎을 수는 없기에 평가자에 따라서도 가중치를 달리한다. 사람들이 확실히 매너 온도가 높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 같고, 이 온도를 99도까지 올리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김용현 대표)
정확한 평판이 신뢰로 이어지는 만큼 매너 온도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공을 들였다. 고객들의 깨알 같은 피드백들을 반영해 매너 온도가 신뢰 수준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가령, 일부 고객들이 거래 후 비매너 평가를 하고 싶어도 상대가 바로 알아챌까 부담이 돼 솔직한 평가를 망설이게 된다고 토로하자, 비매너 평가는 당사자에게 바로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 같은 항목에 대해 여러 사람의 평가가 누적됐을 때 비로소 당사자에게도 알리고 매너 온도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평가자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다.
그리고 거래 당사자들이 약속을 잘 지키게끔 ‘너지(nudge)’를 줬다. 채팅창에서 서로 만남의 시간을 논의하면, 이를 인식해 알람을 설정해주고 거래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알려주는 식이다.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도 가했다. 다만 과거에는 일괄적으로 ‘약속시간을 2회 어기면 경고, 3회 어기면 징계’ 이런 식의 규칙을 뒀지만 이제는 참작 사유가 있을 경우 유동적으로 징계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가령, 한 달에 300번 거래하다 2번 정도 실수로 거래시간을 깜박한 헤비유저와 2번 거래하는 데 2번 다 약속을 어긴 사람을 동일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대 반경 6㎞, 땅따먹기 마케팅으로 영토 확장
당근마켓이 ‘최대 반경 6㎞’를 기준으로 산, 강 등을 피해서 동네를 나눴을 때 주변에서는 이처럼 거래 범위를 제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만류했다. 무엇보다 물량 확보가 관건이었다. 가령, 중고나라에서 중고 아이폰을 찾으면 매물 200개가 검색되는데 당근마켓은 신생 플랫폼이니까 10개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물량이 적은 마당에 같은 동네 주민끼리만 매물을 볼 수 있게 지역을 쪼개놓으면 검색이 하나도 안 될 수도 있는 터였다. 거래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이 때문에 지역 기반 서비스는 말도 안 된다며 말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용현 대표는 회고했다.
회사 직원끼리도 과연 거래 지역을 좁히는 게 맞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뒤늦게라도 지역을 6㎞보다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동네 제한을 푸는 순간 거래액은 쉽게 늘어나고 몸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래’보다는 동네 ‘연결’에 집중하려는 회사의 비전을 포기하는 순간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더 우세했다. 오히려 가능한 한 지역을 더 좁혀야 한다는 게 창업자들의 신념이었다. 단, 현실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은 지방의 경우 최대 15㎞까지 같은 동네로 묶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지방에서까지 6㎞ 기준을 고집하면 인구밀도가 너무 낮아 거래가 촉발되는 데 필요한 임계치 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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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국이 6500개로 쪼개지면서 동네를 하나하나씩 개척하기까지 마케팅 여정도 험난했다. 이제는 정읍, 속초, 통영 정도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당근마켓을 활용한 거래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지만 동네별로 침투해 거래를 활성화하기까지 1년 반∼2년 걸리는 곳도 부지기수였다. 전국 단위 플랫폼에서는 판매자가 부산에 있고, 구매자가 대구에 있어도 서로 매칭이 된다. 그러나 지역 기반 플랫폼은 다르다. 부산 커뮤니티에서 거래가 일어나봤자 대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김용현 대표는 “도시마다 한 땀 한 땀 다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달 부산에서 서비스를 개시하고 구글, 페이스북에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더라도 다음 달 대구에서 서비스를 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커뮤니티 안에서 입소문이 나고, 돈을 안 쓰고도 사용자가 자연 유입될 때까지 계속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지난달에만 전국 52만 명의 가입자가 마케팅 없이 당근마켓으로 자연 유입되고 있지만 이렇게 전국에서 거래가 발생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육아용품을 활발히 거래하는 맘카페가 있는 곳들은 그나마 수월했다. 물꼬가 빨리 터진 부천시나 분당구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주부들이 많이 사는 곳, 특히 신도시에서는 한 번 맘들의 마음을 얻고 입소문을 타면 쉽사리 거래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주거지역이라고 해도 송파구처럼 맘카페 운영 정책과 승급 기준이 까다로워 홍보 글을 쉽게 못 올리는 지역들이라든지, 관악구처럼 1인 가구가 많고 주부가 적은 지역들의 경우 시장 진입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경기도 수원처럼 인구가 빼곡히 밀집해 있어 잘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어렵사리 뚫은 지역도 있고, 강원도 원주처럼 뜻밖에도 빠르게 성장해 주간 방문자 수가 3만5000명에 이르는 지역도 있다.
이렇게 높은 진입 장벽과 싸우면서도 당근마켓은 거리 제한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비스가 궤도에 안착하면 범위를 2㎞ 내외로 더 좁힐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당근마켓의 사용자 한 사람이 하루 평균 보는 게시글의 수는 450개다. 전체 주간 게시물 수는 2016년 약 8000개에서 현재 82만 개로 100배나 늘었지만 사람이 하루에 볼 수 있는 양은 450개에서 크게 변한 적이 없다. 아무리 자주 구경하는 사람도 최대치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 분당구 등 거래가 활발한 지역들의 경우 일주일에 게시글이 3만 개, 하루 평균 약 4300개씩 올라온다. 하루에 볼 수 있는 양보다 게시글이 10배 이상 많다는 것은 범위를 더 좁히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진짜 동네 생활 플랫폼이 되려면 반경 6km도 너무 넓다.” (김용현 대표)
“단돈 만 원에 광고”동네 지라시의 롱테일 효과
‘성남시 백현동, 판교동/ 예상 광고 도달 수 1990∼2980명/ 7일간 예상 광고비 2만4830원’중고 거래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당근마켓은 처음 의도대로 지역 광고 플랫폼을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실행에 옮겼다. 포털에 광고할 여력이 없는 소상공인들에게 분명 미충족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2018년 1월부터 앱에 지역 광고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이런 지역 업체나 구인광고 수요는 벼룩시장, 교차로 등 생활 정보지나 메트로 같은 무가지가 수행하던 역할이었다. 그러나 점점 오프라인 매체의 영향력이 줄고 사람들의 시선이 물리적 경계가 없는 온라인 세계로 옮겨가면서 지역 특화형 광고가 종적을 감췄다.
온라인에서 지역 간 경계를 부활시킨 당근마켓은 바로 이 공백에서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를 떠올렸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적합한 온라인 매체가 없어졌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에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지역 소상공인이 단돈 만 원으로도 마치 중고물품 글을 올리듯 직접 지역 광고 글을 게시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리고 40∼50대 자영업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UX/UI를 단순화했다. 군더더기는 모두 빼고 광고를 노출하고 싶은 동네와 노출 기간, 두 가지 사항만 체크하면 자동으로 예상 광고 도달 수와 광고비가 뜨도록 한 것이다. 카드를 등록해놓고 결제만 하면 광고가 즉시 앱에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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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근마켓에서 광고를 집행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편리한 UX/UI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대다수 소상공인이 40∼50대 아줌마나 아저씨들인데 이분들도 카카오택시는 부를 수 있지 않나. 이분들은 페이스북이나 구글, 포털에 광고하고 싶어도 어려워서 손조차 못 댄다. 페이스북도 1㎞ 단위로 광고할 수 있게 해주지만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CPA(판매액 기준 과금)인지, CPM(노출 기준 과금)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가 많고 절차가 복잡해 잘 못 쓰는 것이다. 그러나 ‘광고비가 일주일에 한 동네당 얼마다’ ‘몇 명이 광고 봤다’ 이렇게 알려주면 곧바로 그 의미를 안다. 이렇게 누구나 당근마켓 광고주센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낮추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광고 영업 인력도 따로 두지 않는다. 일주일에 몇만 원인 광고비를 벌기 위해 일일이 동네 가게들을 찾아가 봤자 알바생들만 있어 사장을 만나기도 어렵고 가까스로 사장님을 만나도 잡상인 취급받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에 당근마켓은 인건비도 안 나오는 광고 영업을 뛰기보다는 사장 스스로 원할 때 쓸 수 있고, 3분 만에 광고 결제까지 끝낼 수 있는 앱을 만들었다.
당근마켓에서 동네 1곳에 일주일(7일)간 광고할 때 드는 돈은 만 원 안팎. 동네별 방문자 수에 따라 가격은 조금 다르다. 같은 성남시라도 주간 방문자 수가 많은 판교동(1328명)이나 백현동(1155명)에 광고를 내보내려면 테크노밸리(317명)에 내보낼 때보다는 조금 더 내야 한다. 이처럼 동네마다 다르긴 하지만 현재 광고주들이 당근마켓에서 평균적으로 집행하는 광고비는 일주일에 약 7만 원 정도다.
김용현 대표와 김재현 대표는 이런 서비스가 소액으로 광고하려는 소상공인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고 봤다. 양쪽 모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주민들에겐 지역 광고도 ‘정보’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가령, 동네 네일케어 숍 또는 미용실 오픈이나 할인 프로모션, 이벤트 소식이 다른 동네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지만 동네 주민에게는 알짜 생활 팁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참여하는 광고주가 제한적이고 동네 업체 정보가 별로 없지만 당근마켓이 마케팅 플랫폼으로 정착되면 지역 상권 데이터도 더 의미 있는 정보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이렇게 2018년 1월부터 시작된 지역 광고 매출은 꾸준히 늘어 지난 1년9개월간 약 24배 뛰었다. 동네 학원, 헬스클럽, 과외 선생님, 부동산, 중고차 등 광고주 면면도 다양해지고 있다. 당근마켓 앱에서 동네별 타깃 광고를 하면 무작위로 전단지를 돌리거나 지역신문, 버스에 광고할 때보다 20배 넘는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용현 대표에 따르면 당근마켓 앱의 평균 광고 클릭률은 5%가 넘는다. 100명에게 광고가 노출되면 5명이 클릭해본다는 얘기다. 일반 배너광고 클릭률이 0.03%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100배가 넘는 수치다.
전국 단위 광고와 비교하면 이런 지역 광고는 티끌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용현 대표는 ‘티끌 모아 태산’, 롱테일의 힘을 강조했다.
“아직 개인 맞춤형 광고가 아니라 무작위 광고인데도 클릭률이 상당히 높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우리 동네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본다는 의미다. 현재 배달의민족은 배달 가능한 지역 음식점 광고만으로 1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작년 말부터 네이버 플레이스도 동네 광고를 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며 지역 광고를 네이버 뉴스 하단에 노출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개발이 안 됐을 뿐 이 시장도 모이면 2조∼3조 원 규모로 금세 클 것이라 생각한다” (김용현 대표)
동네 품앗이, 커뮤니티 서비스의 부활
“오후에 강아지 주변 산책시켜 주실 분 계신가요?”“동네 축구 동호회 참여하실 분∼”“반찬 나눔 하고 싶습니다.”
최근 당근마켓은 강남, 분당, 제주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동네 생활’ 메뉴를 만들어 시범 운영 중이다. 그동안에는 내게 필요 없어진 물품을 원하는 동네 주민과 나누는 중고 거래가 중심이었다면, 이를 넘어 주민들의 정보와 시간, 재능 등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 “지금 이 시각에도 우리 동네 누군가는 분명히 우리 집 강아지를 산책시켜주거나 우리 애를 2시간 동안 봐줄 수 있고, 축구 동호회에서 대신 뛰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몰라 맡기지 못할 뿐이다. 이런 이웃사촌들을 잘 연결하면 어마어마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김용현 대표의 말이다.
당근마켓은 먼저 중고 거래로 지역별 사용자 기반을 넓힌 뒤 궁극적으로 동네의 모든 업체, 동네 모임 활동 관련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지역 생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동네 치과 어디가 좋은가요?” “지금 이마트 열었나요?” 등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모든 정보가 올라오고 교환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아직까지는 중고 거래 외에 매력적인 콘텐츠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당근마켓이 가야 할 길이 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위치 기반으로 성공한 서비스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배달의민족 정도다. 그러나 당근마켓의 경우 이미 중고 거래 덕분에 동 단위로 사람들을 묶어놨기 때문에 커뮤니티 서비스 확장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동네별 사용자 DB라는 어마어마한 진입 장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근마켓의 중고 거래 게시판만 보더라도 이미 지역마다 사용자들의 독특한 문화나 색채가 형성돼 있다. 가령, 강남 서초구에서는 명품 가방과 구두가 많이 올라온다. 또 제주도의 경우 감귤이나 생선 등 각종 식자재부터 중고차, 가구 등이 많으며 바다를 건너는 운송비가 반영돼 물가가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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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은 이처럼 중고 거래로 다진 입지를 바탕으로 동네 커뮤니티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역 내에서 아직 오프라인으로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거래를 온라인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배달 서비스는 물론이고 동사무소 주민센터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마을 직거래 장터, 아파트 부녀회에서 하는 에어컨 청소 공동 구매 등을 대체하겠다는 것.
“배달의민족은 음식만 배달하지만 사실 동네에서 배달할 수 있는 건 세탁물 등 얼마든지 많다. 또 아파트 부녀회 공동 구매처럼 당근마켓이 특정 생산지역과 특정 소비지역의 연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가령, 어떤 과수원에서 서울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특상급 감을 팔고 싶어 한다고 해보자. 우리는 한 박스당 7만 원을 호가하는 특상급 감을 살 만한 소득 수준의 단지, 즉 강남이나 송파 주민들을 타깃으로 삼아 단체 배송을 해줄 수 있다. 이렇게 한 번에 대량으로 실어 나르면 배송비가 절약돼 주민들은 싱싱한 과일을 싼값에 먹을 수 있다. 에어컨 청소 공동 구매 같은 경우도 판매자와 소비자를 잘 연결하면 청소 도우미들은 특정 단지 안에서만 돌면 되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동선을 짤 수 있고, 주민들은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김용현 대표)
아직은 동네 생활 메뉴에 생활 정보가 중구난방으로 올라와 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주제별로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당근마켓의 설명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자연히 연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도 인테리어 등 특정 주제를 ‘팔로우’할 수 있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제별 팔로워가 일정 수를 넘어서면 개방형에서 폐쇄형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팔로워끼리만 글을 공유하도록 하고, 연결의 강도와 소속감을 키워야 끈끈한 소모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와 비슷한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고 뭉치고자 하는 니즈가 있다. 그리고 맘카페를 비롯해 모든 사교 클럽에는 가입조건이 있고 어느 정도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 글을 올리는 권한을 주고 클럽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다. 동네 생활은 이런 모임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당근마켓의 타깃 이용자는 ‘25세에서 55세까지의 여성’이다. 아무래도 동네 관련 정보는 여성들이 빠삭하게 꿰고 있고, 남성들은 배우자나 여자 친구 등에게 문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주도하는 여성들을 사로잡아야만 동네 소식이 빠르게 모이고 퍼질 수 있다. 당근마켓은 동네별로 이 타깃 인구의 절반 정도를 사용자로 끌어들이면 충분히 이와 같은 ‘연결’ 비즈니스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로만 한정했을 때 이 인구는 약 500만 명, 전체 남한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타깃 인구수 대비 가입자 수를 나타내는 침투율을 보면 서울은 26% 정도고, 제주도는 69%다. 당근마켓은 이렇게 지역마다 침투해 2년간 약 1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2019년 말 글로벌 진출도 본격화한다. 최근 당근마켓의 비즈니스 모델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네이버 라인의 중고 거래 앱 ‘GET IT(겟 잇)’의 경우 2018년 12월 베트남에서 출시된 지 1년도 채 안 돼 월간 순이용자 수 100만(MAU)을 확보했다. 동남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시장을 선점한 것이다. 당근마켓과 똑같은 메인 화면, 동네 인증 화면, 동네 범위 설정 화면 등의 기능을 가진 ‘겟 잇’의 인기는 역설적으로 당근마켓 서비스가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특히 동남아의 경우 사람들의 모바일 이용이 활발하고, 인구밀도도 높고, 한국과 문화적으로 친숙해 시장의 이질감이 덜하다. 따라서 비교적 시장 기회가 많다는 설명이다.
김용현 대표는 “연결에 대한 욕구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동네에서 내가 가진 필요 없는 물건을 팔고, 동네 사람과 정보를 교환하고, 동네에 있는 가게를 찾는 품앗이는 베트남, 일본, 프랑스, 미국 등에도 보이는 인간 공통의 행동 패턴이다. 이 때문에 굳이 한국에서만 사업을 할 이유는 없음므로 글로벌로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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